유통
"약사·챗GPT 믿고 샀는데"…영양제 추천에 숨은 함정
- [불안 먹고 크는 영양제 시장]④
건기식 구매자 40.3% 전문가 추천 신뢰
식약처, 가짜 의사·약사 광고 규제 강화
[이코노미스트 강예슬 기자] ‘약사가 꾸준히 챙겨 먹는 영양제’ ‘약사가 평생 먹을 영양제 순위’.
유튜브에 ‘영양제 추천’을 검색하면 ‘약사 추천’을 내세운 영상이 다수 노출된다. 영상에 등장한 약사는 ▲오메가3 ▲피크노제놀(소나무 껍질 추출물) ▲커큐민 등 영양제 종류와 효능만 소개할 뿐 제품명은 알려주지 않는다.
영상에는 “정확한 상품명이 궁금하다” “그래서 어떤 브랜드 제품을 먹어야 하냐” 등의 댓글이 여럿 달렸다. 영양제 추천 등 건강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는 약사 대부분은 인스타그램 등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건강기능식품(건기식)을 홍보한다.
검색 의존 줄고…SNS·인터넷 광고 비중 ↑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며 온라인과 SNS 등에 영양제 관련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건강 관련 정보를 얻거나 상담을 받으려면 병원이나 약국에 직접 방문해 의사와 약사를 만나야 했다. 이제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전문가가 제작한 콘텐츠를 손쉽게 접하고,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상담도 받을 수 있다.
이른바 ‘약사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커진 배경이다. 약사 인플루언서의 가장 큰 무기는 ‘전문성’이다. 단순히 상품 홍보에 그치는 일반 인플루언서와 달리 약사 인플루언서는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제품의 성분과 효능 등을 분석하고 맞춤형 상품과 조합을 추천한다.
지난 2024년 KBS 공영미디어연구소가 건기식 구매 경험자 1026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약 67.7%가 유튜브·인스타그램 등 디지털 매체에서 건기식 정보를 보고 구매를 결심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약사·의사 등 전문가 추천’이 건기식 구매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한 비율은 40.3%를 기록했다. ▲기능·효능(65.4%) ▲제품 후기(40.4%) 등과 함께 주요 구매 고려 요인 중 하나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가 발간한 ‘2025 건강기능식품 시장 현황 및 소비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최근 1년 내 건기식 구입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7.9%로 집계됐다.
건기식을 구매한 응답자 가운데 89.8%는 구입 전 상품과 관련 정보를 탐색했다. 건기식 구매 시 가장 신뢰하는 정보 탐색 경로로는 ‘인터넷 검색 포털·웹사이트’(25.6%)가 꼽혔다. ▲지인·주위 사람의 소개(13.4%) ▲의사나 약사 등 전문가의 조언·권유(11.4%) 등이 뒤를 이었다.
포털·웹사이트 검색을 통해 건기식 관련 정보를 얻는다는 답변 비율이 가장 높았지만, 최근 3년 새 포털·웹사이트 검색 이용률은 ▲2023년 52.0% ▲2024년 47.9% ▲2025년 46.4% 등으로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반면 SNS 제품 소개와 인터넷 광고 등으로 정보를 탐색하는 비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SNS 제품 소개를 통해 정보를 얻는 응답자 비중은 ▲2023년 16.6% ▲2024년 17.8% ▲2025년 19.9%로 나타났다. 인터넷 광고 비중은 ▲2023년 11.9% ▲2024년 13.6% ▲2025년 16.4%로 집계됐다.
약사 유튜브를 즐겨보고, 공동구매에도 참여했다는 30대 직장인 구모씨는 “영양제에 관심이 많은데 포털 사이트 검색 결과는 출처도 불분명하고 대부분 광고라 신뢰하기 힘들다”며 “약사가 직접 건강 고민에 따른 영양제 성분과 상품을 추천해 주면 아무래도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수많은 돈을 들여 연예인 모델이 광고하는 것보다 유명 약사 인플루언서의 추천이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면서 “약사 인플루언서와 협업하면 약사의 전문성에 기대 제품을 홍보할 수 있고, 수익성도 좋아서 최근 약사 인플루언서와 공동구매를 추진하는 제약사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AI 환각·가짜 전문가 경계해야
약사 등 전문가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전문성에 대한 신뢰가 제품 구매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도 제기된다. 성분의 기능을 설명하는 콘텐츠가 특정 제품의 공동구매로 연결되면 소비자가 객관적인 건강 정보와 광고를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정보 탐색 채널이 생성형 인공지능(AI)과 숏폼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유형의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챗GPT, 제미나이 등 AI 챗봇에 영양제 정보를 문의하면 온라인상의 상업적 블로그 글이나 편향된 마케팅 자료 등을 학습해 의학적으로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성분을 추천하는 것이다.
생성형 AI가 존재하지 않는 연구 논문을 인용하거나 없는 법령 조항, 실재하지 않는 전문가의 발언 등을 만들어 잘못된 약물 복용법이나 과장된 치료 효과 등을 제시할 수도 있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AI로 생성된 가짜 의사 등 의료인을 등장시키거나 ‘의료인 추천’ ‘의료인 검증’ 등의 표현을 사용해 제품을 홍보하는 사례도 늘어나는 추세다. 실제 의료인이 아님에도 전문가인 것처럼 연출해 소비자를 유인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지난 1월 생성형 AI로 만든 의사 등 전문가의 식의약품 추천 광고를 위법 행위로 규정했다. 앞으로 관련 단속도 강화한다.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지난 10월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식약처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 “소비자를 현혹하는 AI 가짜 의사·약사의 추천 광고 행위를 전면 금지하고 화장품 책임판매업자의 광고 관리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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